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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n Content 푸르덴셜 푸르덴셜

흐트러짐 없는 자세와 표정, 그리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 뒤에 숨겨진 선한 미소.
10년 전 초등학교 교사에서 라이프플래너®(Life Planner, 이하 LP)로 커리어 전환을 한 그녀. 10년 전으로 다시돌아가더라도 역시 푸르덴셜을 택할 거라는, 자신의 일에 뜨거운 자부심을 가진 이은지 LP를 만났습니다.

 
최강 Agency 앞에 서있는 이은지 LP

Q.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부터 해주시겠어요?

A. 안녕하세요. 푸르덴셜생명 최강 Agency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은지 LP라고 합니다. 푸르덴셜에 오기 전에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었고요. LP로 일을 한 지도 올해로 벌써 만 10년, 11년 차에 접어들었네요.

 

Q. 선생님이라면 (특히나 여성들에게) 굉장히 안정적인 직업일 텐데요. 어떤 계기로 LP가 되신 거예요?

A. 제가 교사로 근무할 때 제 사촌 오빠가 푸르덴셜의 LP로 일하고 있었어요. 그때 우연히 리쿠르팅에 참여하게 됐는데, 나중에 저를 뽑으셨던 부장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이은지 선생님은 지금 자기가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최고라고 생각하세요?”라고요. 나름 발끈해서 “네, 그럼요.”라고 대답했어요(웃음). 저는 항상 제가 하는 일에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 생각해보니 학교에서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은 받고 있었지만, 뭔가 살아있지 않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뭔가 일을 하면 그만큼 투여된 것에 대한 결과나 보상이 있었으면 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없고. 쳇바퀴 도는 듯한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결국 진짜 ‘내 일’이 하고 싶어졌어요.

Q. 정말 생각보다 가족의 반대가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A. 해보고 싶다고! 나 정말 하고 싶다고요(웃음). 남편도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지만, 특히 시댁의 반대가 심했어요. 물론 반대를 무릅쓰고 일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는 집안 어른들의 허락을 받고 시작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1년 정도 만류하시다가 결국 허락해주셨죠. 나름 힘들게 일을 시작했어요.

 
물음표와 SMRLAV가 책 위에 놓인 모양

Q. 직접 해보니 어떠셨어요, LP라는 일은요?

A. ‘힘들다’라기보단 ‘어렵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아요.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은 일은 없거든요. 하지만 어렵다는 건 다른 문제죠. 모든 사람의 상황은 다 달라요. 그 말인즉 똑같은 상담은 단 한 번도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매번 새롭게 준비해야 하죠. 다른 누군가와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잡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절대 쉬울 수가 없죠. 하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Q. 어렵게 시작한 LP 일을 10년 넘게 잘해오고 있으신데요. 이 일에 적합한 본인만의 장점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A.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느꼈던 것이, 아이들은 정말 ‘흰 종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려 깊고 예의 바른 아이가 있는가 하면 정말 버릇이 없는 아이들도 있잖아요.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그림을 어떻게 그려주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달라질 수 있거든요. 저는 보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고객에게 어떤 철학과 생각을 전달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보험에 대해 가진 관점이 바뀐다고 봐요. 물론 대상은 다르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경험이 누군가를 상담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어요. 이런 경험을 활용할 줄 아는 것이 저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특히 제 가족은 모두 공무원 출신이거든요. 부모님, 언니 모두 군인 또는 교사로 일하고 계셔서 공무원들의 사정, 그들의 시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그리고 저는 이제 LP의 시각으로 그들에게 딱 맞는, 적절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거죠.

 

Q. 만난 고객도 참 많으셨을 것 같은데, 고객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A. 제가 지금까지 사망보험금을 3번 지급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객분들과 많은 기억을 남기게 됐고요. 남편분이 돌아가시면서 저의 가장 큰 고객이 되신 미망인 한 분, 제 아이보다 한 살이 어린 아이를 둔 고객도 한 분 계세요. 저희 아이와 고객분 아이는 크리스마스 때 집에서 같이 잘 정도로 친하게 지내면서 꾸준히 왕래하고 있고요. 마지막 한 분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구나’라고 느끼게 해준 분이에요.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병을 얻어 시력을 잃으셨어요. 지금은 빛의 유무만 판단할 수 있고요. 그분과 저는 마침 같은 동네에 살아서 시력을 잃기 전에 제 아이와 함께 종종 찾아뵙곤 했거든요. 지금도 제가 찾아가면 맨발로 뛰쳐나올 정도로 반갑게 맞아 주셔요. 그 고객분께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다고 연락 드렸던 그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요. 서로 울면서 통화했었거든요. 그분께는 특약으로 인해 매월 200만 원씩 지급되고 있어요. 그분의 자녀는 푸르케어즈 유자녀 해외봉사단에도 다녀 왔고요. 이 모든 일은 회사가 해주고 있지만, 그분은 항상 저한테 고맙다고 하셔요. 저는 그럴 때마다 이 일은 정말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대신해서 해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분께 러브레터(고객이 향후 유족에게 남기는 가족 사랑의 편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린 적 있어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쓰셨던 러브레터가 있는데. 드릴까요?” 했더니 받아보고 싶으시대요. 그러면서 “은지 씨, 참 묘하다. 내 유서를 내가 받아본다는 게…”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기분이 묘했어요.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을 지금 내가 하고 있구나, 정말 가치 있는 일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죠.

 
인터뷰를 진행 중인 이은지LP 모습

Q. 힘든 순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어떻게 극복하세요?

A. 그럼요. 솔직하게 가끔 ‘내가 이 일을 왜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도 많아요.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요. 옛날 어른들이 ‘복 짓는다’라는 말씀을 하시잖아요? 제가 그 말을 참 좋아하거든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나면 ‘복 지었다’라고 생각해요. 그럼 그 복이 돌고 돌아 저에게 다시 오거나, 제 아이에게 가거나, 내 가족 또는 지인에게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 거죠. 그리고 제가 후배들에게 자주 해주는 얘기가 있어요. LP는 자유시간이 많아요. 나만 알고 있는 시간들인 거죠. ‘그 시간에게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라는 얘기를 해요. 저도 늘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책상에 머리를 두고 우울해하는 여성

Q. 결국은 ‘이 일을 선택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시나요?

A. 가끔 10년 전 일을 생각해요. ‘만약 그때 내가 이 일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쳇바퀴 돌던 내 삶에 변화가 있었을까?’라고요. 그러고 나서 지금 내 삶을 보면, 그때 선택을 잘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이 일을 하는 우리가 느끼는 보람이나 만족도에 비해 일반 사람들이 바라보는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의 관점이 생각보다 낮아요.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이 정말 숭고한 일이고,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 제 아이를 볼 때도 많은 보람을 느껴요. 가끔 아이와 함께 지점에 올 때가 있는데, 아이가 제 이름표를 지점원들 맨 앞자리 1등에 붙여 놓고 “우리 엄마 바둑알이 제일 많다”고 할 때가 있어요(웃음). 저는 이 일을 시작한 이후로 아이에게 엄마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모습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길 바라고 있고요.

 
미소 짓고 있는 이은지 LP

Q.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더 궁금해졌어요. 이 일을 시작할 때 푸르덴셜이 아닌 다른 회사를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A. 네! 전혀 없었어요.

Q. 푸르덴셜만 보고 시작하신 거예요? 어떤 점이 가장 끌리셨나요?

A. 저는 푸르덴셜이라는 회사가 가진 철학과 가치관이 가장 좋았어요. 가족 사랑과 인간 사랑의 정신을 실천한다는 것. 저희는 그것이 푸르덴셜만이 가진 ‘파란 피’라고 얘기하거든요. 푸르덴셜의 LP들은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가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실 LP들에게 시간은 정말 중요하거든요. 제가 일하면서 같은 업계에 있는, 다른 회사 분들을 자주 만나기도 하는데, 그분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게 바로 이 ‘푸르덴셜 문화’인 것 같아요. 이런 문화는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저는 고객들께 명가시조(名家始祖)에 대해 종종 이야기해요. ‘저의 궁극적인 목표는 당신의 가정에 명가시조를 만들어 드리는 것’이라고 말이죠. 저는 물질적으로 대단한 것보다 부모가 가진 마음, 가치관을 자식자녀에게 잘 전달하는 가문이 명가라고 생각해요. 푸르덴셜이 하는 일 역시 그것과 일치한다고 보고요.

 
사람모양의 그림이 그려진 종이에 돋보기가 놓인 모양

Q. ‘푸르덴셜의 문화’라고 하는 것.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A. 대표적으로, 아까 말씀드렸던 ‘푸르케어즈 해외봉사단’이라고 아시나요? 푸르덴셜 고객의 유자녀와 해외 봉사에 나서는 프로그램이에요. 사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그다지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다녀오고 나면 아이들의 삶이나 생각이 정말 많이 바뀌곤 하죠. 프로그램의 취지가 그것이거든요. 봉사라는 나눔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신감, 자존감을 심어주는. 이 활동에도 역시 LP들이 참여하죠. 사실 지원금도 LP들의 기부를 통해 만들어지고요. 보험금만 지급하고 끝이 아닌, 유자녀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들이 모두 가족 사랑을 실천하는 푸르덴셜의 문화인 거죠. 또, 직원의 입장에서 봤을 때 PTC(President’s Trophy Contest) 컨벤션 역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인 것 같아요. LP가 성취한 일을 그들의 가족들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당신의 가족, 당신의 자녀가 이렇게 인정받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요?

 

Q. LP 일을 하기에 ‘여성이라서 더 좋은 점’ 같은 것들이 있을까요?

A. 아무래도 워킹맘으로 일하기에 좋은 점이 많아요. 나의 일과 일정은 스스로 조절할 수가 있으니까. 아이를 위해 빼야 할 시간이 있다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진행할 수 있죠. 녹색어머니회 같은 일 말이에요(웃음). 시간을 관리하면서 일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에요. 외부적인 압력으로 경력의 공백이 생길 일도 없고, 전문성을 쌓아갈 수 있으니까요. 일의 관점에서는, 여자 또는 엄마라서 공감 능력이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것? 이 일은 결국 고객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라 그런 능력이 꼭 필요해요. 여자로서의 인생을 두고 봤을 때도 좋은 점이 있어요. 육아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끝나요. 아이가 커갈수록 엄마의 역할은 줄어들죠. 그렇게 되면, 그 이후의 내 삶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가 다 자란 후에도 내 인생이 있고, 내 시간이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계속 성장해나갈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내가 이 일을 마치고 났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어요. ‘아, 내 담당 LP가 이은지어여서 정말 좋았다, 다행이다’, ‘우리 회사에 저런 선배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라는 말을 들으려면 정말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정말 보람차게 일하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들이 많이 알려지면서, 궁극적으로는 이 일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좋아졌으면 해요저희 일이 더욱 인정받는, 쉽게 선택하는 일이 아닌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임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웃음).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눈 이은지 LP에게서 단연 느낀 점이 있습니다.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라는 것을 말이죠. 진심으로 원했던 일을 뜨거운 사명감으로 해내고 있는 그녀. 엄마로서, 가족으로서, 동료로서 인정받고, 나아가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앞날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준법감시인확인필-SM-1803000-3